지명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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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유래
지명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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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동 | 미아동이란 이름은 조선말 고종 2년(1865)에 편찬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미아리계라고 공식기록에 처음 나타나는데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되너미고개(돈암현)을 일명 미아리고개라고 부르는 까닭에 고개이름에서 동명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미아 7동에 있는 불당(佛當)골에서 미아사(彌阿寺)가 오랫동안 있었으므로 이 절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여하간 미아리라는 한자 뜻 그대로 언덕에서 쉬어간다는 마을 이름인 만큼 동명과 고개와는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겠다. |
수유동 | 수유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태조 5년(1396)에 동부에 속했으며, 그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수성책자 [도성삼군분계총록]에 동부 숭신방(성외) 가오리계, 수유촌계, 우이계로 되어 어영청 전영에 소속되어 도성방어에 일익이 되기도 하였다. 수유동명의 유래는 삼각산 골짜기에서 물이 이 마을로 넘쳤기 때문에 물 수(水)자와 넘칠 유(踰)자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우리말로는 물이 넘친다 하여 '무너미'라고 부르게 되었다. |
빨래골 | 수유동 486번지 일대의 이곳은 삼각산 골짜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고 부르게되었다. 물이 많아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인근 주민들의 쉼터와 빨래터로 이용되었고, 당시 대궐의 궁중 무수리들이 빨래터와 휴식처로 이용하면서 빨래골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으며 지금도 널리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지명이다. |
번동 | 번동이라는 이름은 18세기 중엽 정선 그린[도성대지도]와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에 벌리(罰里)로 표시되어 왔으며 갑오개혁때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번리로 되어 있다. 이때 벌리(伐里)가 번리(樊里)로 바뀐 것 같다. 번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를 살펴 보면 고려 시대에 쓰여진 [운관비기]라는 책에 "李氏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는 비기설이 있어, 고려 말기의 왕과 중신들이 이 설에 의거 경계를 하던 중, 한양 삼각산 아래 이곳에 오얏나무(李)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李氏가 흥할 징조라 여겨 오얏나무를 베기 위해 벌리사를 보냈는데 이로부터 이곳을 벌리(伐里)라 칭하다가 번리(樊里)가 되었다고 한다. |
우이동 | 우이동이라는 동명의 유래는 동리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소 귀 같이 보이는 봉우리가 있으므로 소귀봉 즉 우이봉 아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전해진다. 우이동은 도성에서 꽤 먼 거리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서울의 성외 지역의 한 마을로 되어 있었으며, 고종 4년(1867)에 발간된 육전조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성외) 우이동계가 있었고 또 갑오개혁 당시에 문서에 동서숭신방(성외) 동소문외계에 우이리가 있다. |
가오리 | 가오리는 현재 수유동 우이초등학교 등이 있는 곳으로 옛날 미아리 고개에서 장사를 지내는 소리가 임금에게까지 들리자 번잡스러우니 오리(五里)를 더 가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